티스토리 뷰
목차

드라마를 이해하려고 종이에 가계도를 그려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A4 두 장을 이어 붙여서야 겨우 끝났습니다. 넷플릭스 '다크(Dark)'를 보면서 생긴 일입니다. 시간여행 드라마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봐도 된다고들 하는데, 제 경험상 이 작품은 좀 달랐습니다.
손으로 적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었던 시간여행
일반적으로 시간여행 드라마는 주인공이 과거나 미래로 한 번씩 오가는 단선적 구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다크'를 틀었을 때도 비슷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즌 1 4화쯤에서 저는 보던 화면을 멈춰야 했습니다.
울리히와 미카엘이 같은 인물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사람이 1953년, 1986년, 2019년에 각각 다른 나이로 등장하다 보니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인물인 줄 알았습니다. 자막을 두 번 돌려봐도 헷갈려서 결국 종이를 꺼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가계도 작업은 A4 한 장을 넘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뵈러 가문, 카나 가문, 니일센 가문이 혈연으로 뒤엉켜 있다 보니, 한 사람을 세 개 시간대에 걸쳐 따로 적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생겼습니다. 나중에는 이름 옆에 연도를 괄호로 달다가, 결국 선을 그어 관계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드라마 하나를 이해하려고 이렇게까지 손을 움직인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타임라인 정리 영상, 정주행 전에 볼까 후에 볼까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유튜브 채널 Think Story의 'DARK Complete Series TIMELINE in Chronological Order Explained!' 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시즌 1부터 3까지 뒤엉킨 사건들을 1888년부터 2053년까지 실제 발생 순서로 재배열해 설명하는 16분짜리 영상입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제가 손으로 그렸던 가계도의 빈 곳을 채우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됐습니다. 다만 이 영상을 정주행 전에 먼저 보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크'의 재미는 정확히 그 뒤죽박죽 순서 때문에 시청자가 직접 혼란을 견디며 퍼즐을 맞춰가는 경험에 있는데, 완성된 연대표를 먼저 보고 나면 그 과정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즌을 다 본 뒤 복습용으로 보는 걸 추천합니다. 순서를 알고 나서 다시 보면, 놓쳤던 장면들이 다르게 보이는 재미가 따로 있습니다.
결정론적 루프, 그리고 그걸 흔드는 시즌 3
'다크'가 단순한 타임루프물과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사건이 이미 정해진 결과를 향해 흘러간다는 감각 때문입니다. 루프를 끊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루프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구조라, 아담과 이브 두 세력이 아무리 싸워도 결국 같은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가계도를 그리면서 느꼈던 막막함도 비슷했습니다. 어떤 인물을 따라가도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왔거든요.
그런데 시즌 3에서 '오리지널 월드'라는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하면서 이 답답함이 조금 풀립니다. 루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러니까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는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다크'를 그냥 잘 만든 타임루프물이 아니라 다시 볼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가계도를 그리는 수고를 감수할 생각이 있다면, '다크'는 그만한 값을 하는 드라마입니다. 시즌 1을 볼 때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시고, 헷갈리는 인물이 나올 때만 메모를 남겨두시길 권합니다. 정주행이 끝난 뒤에 그 메모를 다시 펼쳐보면, 이 드라마를 두 번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겁니다.
참고: DARK Complete Series TIMELINE in Chronological Order Explained! (Think Story) https://www.youtube.com/watch?v=Nqm0FZ72M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