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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리뷰 (선망과 질투, 에코이스트, 나르시시스트, 드라마를 본 뒤)

by tigermorning 2026. 5. 23.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포스터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 살게 된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제 생각이 났다고, 그 시절이 너무 그리워졌다고. 저는 그 메시지를 받고 한동안 일부러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떠올릴 때 밀려오는 그 아련한 감각이 싫었으니까요.

 

선망과 질투, 닮았지만 다른 두 감정

드라마를 봤습니다. 그리고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든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살짝 가슴이 아픈 것 같은 어떤 "감각"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아주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드는 느낌, 오래전에 가장 친했던 사람을 생각할 때 드는 그 복잡한 느낌. 그리운데 연락하기 어렵고, 보고 싶은데 막상 만나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우리 몸에 퍼지는 그 감각 말입니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품은 감정의 구조였습니다. 은중이 상연에게 가진 건 선망이었고, 상연이 은중에게 가진 건 질투심이었습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 두 감정은 정신의학적으로 전혀 다른 구조를 갖습니다. 여기서 선망이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를 부러워하는 감정으로, 나와 상대, 두 사람만 있으면 성립합니다. 반면 질투심은 나와 상대, 그리고 그 관계를 위협하는 제삼자가 있어야 비로소 작동하는 감정입니다. 쉽게 말해 질투는 늘 비교의 삼각형 안에서 자란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이 드라마를 봤을 때, 상연이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질투심의 뿌리가 생각보다 훨씬 이른 곳에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음식을 먼저 덜어주는 엄마의 손길 하나에서 시작된 오해가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혼자 가설을 세우고, 혼자 단정하고, 혼자 분노하는 방식으로 내재화한 상연. 이런 감정 억압 방식은 실제로 애착 불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애착 불안이란 가까운 관계에서 버려지거나 거부당할 것을 지속적으로 두려워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유형의 사람과 가까워지면,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벽이 쳐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에코이스트와 나르시시스트, 끌리지만 섞일 수 없는 관계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자꾸 멈추게 된 지점은 은중의 언어였습니다. 셋이 이렇게 술을 마시니까 너무 신난다는 그 한 문장. 관계를 독점하려는 사람 옆에서, 관계를 확장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차이가 결국 두 사람이 끝내 섞일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두 유형을 에코이스트(echoist)와 내향적 나르시시스트(covert narcissist)로 설명합니다. 에코이스트란 갈등과 거절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욕구를 줄이고 타인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나르시시스트의 정반대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내향적 나르시시즘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섬세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인정 욕구와 불안정한 자존감이 공존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자존감(self-esteem)이란 단순한 자신감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내면의 안정성을 의미합니다. 에코이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나르시시즘 성향의 상대에게 이끌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 패턴은 어린 시절 양육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상연을 그냥 나쁜 친구로 소비하고 끝낼 줄 알았는데, 드라마는 상연의 결핍을 설명하는 데 꽤 많은 공을 들입니다. 상연이 그렇게 행동한 건 악의라기보다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긋난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게 상연을 미워하면서도 어느 순간 불쌍해지는 이유였습니다.

 

두 유형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코이스트는 관계가 힘들어도 "내가 더 잘하면 되지"라며 자기희생을 선택합니다.
  • 내향적 나르시시스트는 상처받기 전에 먼저 떠나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 두 유형이 만나면 한쪽이 주고, 한쪽이 빼앗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라마를 본 뒤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마지막 여정이었습니다. 스위스의 낯선 호텔 방, 은중과 상연이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그 장면이 아름다웠는지 슬펐는지 한참 동안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아마 둘 다였을 겁니다.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걸린 건 배우의 힘 때문이었습니다. 박지현은 20대의 불안정한 결핍부터 40대의 초연한 죽음까지 같은 사람의 30년을 통과하는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장면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두 배우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30년의 시간이 전달된다면, 그건 연기가 서사를 초과한 순간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여운이 긴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조력사망(assisted dying)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후반부에 배치합니다. 조력사망이란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의료적·법적 절차를 통해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만 합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습니다. 드라마가 이 선택을 단순히 극적 장치로 쓰는 게 아니라, 고통을 거절할 권리와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 방식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무거움과 진중함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김고은은 인터뷰에서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가 동행해 달라고 하면 기꺼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지. 질문에 쉽게 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생각이 왔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연락해 안부를 전할 사람이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평소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말을 나눈 건 아니었지만, 그날 친구와 대화를 마친 뒤 유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가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삶이 이렇게 풍성해지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한때 은중이었고, 또 어느 순간 상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두 역할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전히 관계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마음속에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얼굴이 떠오른다면, 드라마 한 편을 핑계로 먼저 연락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ATPZQj5e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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