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월드컵 기간입니다.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축구는 어느 정도 접해봤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야구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흥미롭게 본 뒤, 이번에는 축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넷플릭스를 둘러보다 발견한 작품이 바로 ‘잉글리시 게임(The English Game)’입니다. 평소 영국 드라마와 시대극을 좋아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축구 드라마가 아니라, 축구가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1화는 “1879년 잉글랜드. 초창기 축구는 규칙을 만든 상류층 클럽이 주도하는 아마추어 스포츠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합니다. 이 한 문장이 당시 축구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습니다. 2화를 보기 전, 드라마 속 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먼저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귀족 스포츠 축구에 노동자 팀의 등장
현대 축구는 누구나 즐기는 대중 스포츠지만, 초기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63년 영국축구협회(FA) 창설 이후 축구 규칙이 정리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은 이튼스쿨, 해로우스쿨, 차터하우스 같은 명문 사립학교 출신들이 주도했으며, 축구는 자연스럽게 상류층 문화의 연장선에 놓이게 됩니다.
'잉글리시 게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1화에 나오는 올드 이튼니언스(Old Etonians FC)는 실제로 존재했던 팀으로, 이튼칼리지 졸업생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귀족 클럽입니다. 이들에게 축구는 생계가 아닌 교양과 경쟁의 영역이었습니다. 또한 규칙을 만드는 주체 역시 이들이었기 때문에, 경기 자체가 상류층 팀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웬 FC(Darwen FC)가 한 축구 천재와 함께 FA컵 무대에 등장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퍼거스 수터(Fergus Suter)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축구 천재입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축구를 통해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히 공을 잘 차는 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통해 계급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그의 등장 자체가 기존 질서에 대한 하나의 도전처럼 기능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축구가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점차 대중의 스포츠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귀족 팀과 노동자 팀의 대결은 스포츠를 넘어 당시 사회 구조의 긴장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처럼 보입니다.
퍼거스 수터: 최초의 프로 축구 선수
퍼거스 수터는 스코틀랜드에서 석공으로 일하던 노동자였지만,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잉글랜드의 다웬 FC로 영입됩니다. 당시 축구는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스포츠였기 때문에 선수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다웬 FC의 구단주는 우승을 위해 퍼거스 수터를 영입하고 대신 급여를 지급합니다.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노동자로서 어쩔 수없었던 선택이지만, 이 때문에 그는 “돈을 받고 축구하는 선수”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이제 축구는 그에게 취미가 아니라 생계와 계급 이동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수단이 됩니다. 실제로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1885년 프로 선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지금은 수많은 프로 선수들이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 시작점에는 당시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퍼거스 수터 같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전술적인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드라마 속 경기 장면을 보면 지금의 축구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선수들은 공을 중심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조직적인 패스 플레이보다는 개인 돌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싸움도 매우 거칠어서 지금 기준이라면 파울이 선언될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퍼거스 수터가 공간 활용과 패스 중심의 플레이를 제안하면서 현대 축구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결국 퍼거스 수터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축구의 프로화와 현대화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실제 퍼거스 수터의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드라마 속 배우와 이미지가 많이 달랐습니다. 좀 더 실제 인물과 닮은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습니다.
아서 키네어드: 상류층 축구의 대표
아서 키네어드(Arthur Kinnaird)는 기존 질서를 대표하는 상류층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는 실제 역사에서도 FA컵과 초기 축구 시스템 형성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축구 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초기 축구 시스템의 기반을 만든 인물입니다.
1화에서 그는 퍼거스 수터와 대비되는 존재입니다. 퍼거스가 변화와 확장을 상징한다면, 키나어드는 질서와 전통을 상징합니다. 그는 축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범과 품격 속에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1화에서는 부정적인 모습 위주로 나오기는 했지만 아서 키네어드가 단순한 대립자나 악역일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임신한 아내와의 대화에서 기존 질서가 옳지 않음을 느끼는 그의 죄책감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인물이 아마도 주인공의 협력자로 변해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 드라마는 선악 구조가 아니라 가치관의 충돌로 확장됩니다.
1화만 봤을 뿐인데도 축구가 어떻게 귀족들의 놀이에서 대중의 스포츠로 변화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이야기를 보기 전에 이런 배경지식을 미리 알아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