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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은 총 6부작, 6시간짜리 시리즈입니다. 저는 공개 당일 하루 만에 다 봤는데, 그러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에서 이 이야기가 맴돌았습니다. 단순히 재밌어서가 아니라, 뭔가 찜찜하게 불편한 게 남아서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란 그런 것 아닐까요.
흡인력
이 드라마의 핵심 장치는 '픽션 속 픽션(fiction within fiction)'입니다. 쉽게 말해,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현실을 소재로 소설을 써나가고, 그 소설을 읽는 교수가 점점 이야기에 빠져드는 구조입니다. 관객은 그 교수와 똑같은 시선으로 소설을 따라가게 됩니다. 보는 사람이 허문오 교수가 되는 셈입니다.
저도 실제로 2화쯤부터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거지?"가 아니라 "이게 진짜인 건가, 꾸민 건가?"를 계속 따져가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궁금한 게 아니라 이야기의 진실이 궁금해지는 상태, 그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흡인력입니다.
연출을 맡은 김규태 PD는 《괜찮아, 사랑이야》,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연출한 분입니다. 과거 작품들도 빠른 전개보다 인물의 심리를 천천히 쌓아가는 방식이었는데, 《맨 끝줄 소년》에서도 그 방식이 잘 살아 있습니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선호하는 분들 중에는 "초반이 좀 느리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느린 호흡이 이 이야기에는 맞는다고 봤습니다. 너무 빠르게 달리면 인물에 감정이 얹히지 않거든요.
열등감
허문오 교수라는 인물을 설명하자면, 열등감의 집합체입니다. 동기인 성공한 작가 김수훈에게 능력으로도 밀리고, 첫사랑마저 그에게 빼앗겼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첫 소설에 추천사도 거절당했죠. 최민식 씨가 이 '찌질함'을 정말 빈틈 없이 소화해 냈습니다. 허준호 씨가 연기한 성공한 작가와 같은 화면에 섰을 때의 그 위축감, 그 표정이 오래 남습니다.
저도 대학원 시절 발표 준비를 꽤 공들여 했다가 교수님께 "방향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게 수많은 발표 중 하나였을 텐데,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이후 발표 준비를 할 때마다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때 깨달은 게 있는데, 상처를 받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그 기억을 스스로 놓아주지 못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경험으로 쌓지만, 어떤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굳혀버립니다. 허문오가 딱 그랬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추 사고(rumination)'라고 합니다. 여기서 반추 사고란, 부정적인 경험을 반복적으로 되새김질하면서 현재 상황에도 그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허문오의 모든 행동에는 이 반추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그가 이강의 소설에 집착하는 이유도, 동기 작가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이유도 결국 거기서 출발합니다.
열등감이 성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나 작가들이 열등감을 창작의 연료로 삼는다고 말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열등감은 그와는 다른 방향입니다. 자신을 끌어올리는 대신 타인을 끌어내려서 그 간격을 채우려는 심리, 그게 얼마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허문오라는 인물로 보여줍니다.
- 동기 작가에게 작가적 역량과 첫사랑 모두를 빼앗긴 이중 박탈감
- 이강의 소설에 집착하며 "내가 쓴 이야기"로 전유하려는 욕망
- 와이프와 각방을 쓸 만큼 관계가 소원해진 고립 상태
- 자기 합리화와 상상의 나래가 맞물리며 점점 광기로 향하는 과정
창작 윤리
이강이 쓰는 소설은 창작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소설로 옮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허문오는 그 '실재감' 때문에 더욱 강하게 끌립니다. 이 설정이 저는 꽤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좋은 이야기인 건 맞는데, 그렇다면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질문이 계속 따라붙었거든요.
'관찰'과 '관음(voyeurism)' 사이의 경계 문제입니다. 관음이란 타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강이 하는 작업이 어디까지 관찰이고 어디서부터 관음인지 드라마는 명확한 선을 긋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영리한 선택이라고 봤습니다. 답을 주지 않으니까 보는 내내 제가 직접 그 경계를 계속 따져가야 했습니다.
원작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입니다. 희곡 원작을 6부작 시리즈로 각색한 작품인데, 무대라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 영상으로 풀어내면서 이 관찰과 관음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요르가의 원작 자체가 창작의 윤리성과 픽션의 경계를 다루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출처: National Theatre), 각색 과정에서 그 주제 의식을 잘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질문에 걸려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저도 주변 사람 이야기를 소재로 뭔가를 써볼까 생각했다가 멈춘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이걸 읽으면 어떻게 느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창작의 자유와 대상이 되는 사람의 존엄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이 드라마는 그 질문을 꽤 오래 남겨두는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력
최민식 씨는 이 작품에서 나이 든 교수의 찌질함과 광기를 동시에 소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찌질하면 가볍게 보이고, 광기만 앞세우면 과해 보이거든요. 저는 보면서 《범죄와의 전쟁》의 그 날카로움과 《악마를 보았다》의 그 서늘함이 희미하게 겹쳐 보이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게 아주 절묘하게 허문오라는 인물 안에 녹아 있었습니다.
최현욱 씨가 연기한 이강은 그와는 결이 다릅니다. 비밀에 싸인 듯하면서도 천진난만해 보이는 이중적 표면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 나이대의 배우가 최민식과 같은 화면에서 그걸 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색함 없이 맞붙어 있었습니다.
김세윤 역의 이진우는 고스트나인 출신 아이돌입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해 "연기력 검증이 안 됐다"는 시각도 여전히 있는데, 저는 요즘은 그 편견이 많이 낡았다고 봅니다. 이진우도 이 작품에서 자기 몫을 충분히 했습니다. 허준호, 김윤진, 진경, 한지은까지, 어느 컷을 잘라내도 연기적으로 빈 자리가 없었습니다.
배우 앙상블(ensemble)의 완성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여기서 앙상블이란 주연 한두 명이 아니라 조연과 단역까지 전체 출연진이 균형 있게 작품의 톤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드라마는 그 앙상블이 잘 갖춰진 편입니다. 한 인물이 과도하게 튀거나 무너지는 느낌 없이 전체가 함께 분위기를 끌고 갑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주연이 잘해도 드라마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맨 끝줄 소년 몇 부작이고 다 보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총 6부작이고 회당 약 1시간 분량입니다. 전부 보는 데 6시간 정도 걸립니다. 저는 공개 당일 하루에 다 봤는데, 시리즈 치고는 부담 없는 분량입니다.
Q. 원작이 있다던데, 원작을 먼저 알고 봐야 더 재밌나요?
A. 저는 원작 희곡을 보지 않고 드라마를 먼저 봤는데,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아는 분들 중에는 각색 방향이 흥미롭다는 의견도 있고, 결말 처리가 다소 다르게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스포 없이 보는 쪽을 추천합니다.
Q. 15세 이상 관람가인데 자극적인 장면이 많은가요?
A. 직접적으로 강렬한 장면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다만 심리적 긴장감이 강하고, 관음적 시선을 활용한 연출 장면들이 있어 은근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극적 장면보다 심리적 불쾌감 쪽에 가깝습니다.
Q.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닫힌 결말인가요?
A. 스포 없이 말하자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편입니다. 다만 이강의 행동 동기 부분이 조금 더 설명됐더라면 더 완성도가 높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결말 자체는 작품의 주제 의식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결론
《맨 끝줄 소년》을 보고 오랫동안 남은 질문은 "좋은 이야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평범한 하루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 결국 더 진한 이야기를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저 자신이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드라마 자체로 보면, 아쉬운 지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강이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가 조금 더 설득력 있게 쌓였더라면 마지막 여운이 더 컸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다 보고 나서 멍하니 앉아 있게 만드는 드라마를 만났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드라마 자체를 즐기기 전에 리뷰를 많이 찾아보는 분들도 있는데, 이 작품만큼은 최대한 정보 없이 보시는 걸 권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게 훨씬 더 재밌습니다. 이강의 소설처럼요.
인간의 열등감과 창작 욕망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다룬 학술적 접근은 창작심리학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으며(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이 드라마는 그 심리를 꽤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