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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정의, 판결, 삶의 무게, 전체 판사 회의)

tigermorning 2026. 8. 14. 08:34

목차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포스터

    판사라는 직업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 반대였습니다. 어렵고 긴 시험 끝에 얻어낸 자리이긴 하지만,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니, 어릴 때 하는 그 고생이 오히려 더 쉬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정답이 없는 삶을 마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드라마는 꽤 정직하게 보여주거든요.



    정의란 무엇인가, 법정 드라마가 묻는 진짜 질문

    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인 추적보다 "이 사람에게 옳은 판결이 무엇인가"를 더 오래 들여다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두 신임 판사입니다. 박차오름은 이상주의자입니다. 사건 기록보다 사람을 먼저 봅니다. 불판 사고 재판에서 조정을 중단하고 진실을 끝까지 파고드는 장면이 대표적이었는데, 저는 그 장면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합의로 끝내면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어느 한쪽이 억울한 채로 집에 돌아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거든요.

    반면 임바른은 다릅니다. 증거 없는 사건은 아무리 안타까워도 판단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냉정하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그 냉정함 안에 다른 무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법이 법이 아니게 된다는 두려움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법관 윤리강령(법관이 직무 수행에서 지켜야 할 행동 기준을 성문화한 규범)이 드라마 안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여기서 법관 윤리강령이란 판사가 재판 외부의 분쟁에 개입하거나 다른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금지하는 지침을 말합니다. 오름이 1인 시위 할머니를 도운 것이 이 규정에 저촉된다고 지적받는 장면에서, 저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행동과 제도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자주 충돌하는지를 실감했습니다.

    요약: 《미스 함무라비》는 범인을 찾는 드라마가 아니라, 정의의 기준 자체를 묻는 드라마입니다.

     

    판결보다 어려운 것, 사람의 사정을 듣는 일

    드라마 안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은 화려한 법정 공방이 아니었습니다. 불판 사고로 아들이 트라우마를 얻은 어머니에게 박차오름이 "괜찮으셨어요?"라고 묻는 순간이었습니다. 사건 기록 어디에도 그 한 마디를 요구하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법정 안에서 굳게 닫혀 있던 진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제 경험이 겹쳤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말이 해결책이나 정답이 아니라, "그랬구나"라는 한 마디였던 적이 많았거든요. 들어준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뒤늦게 배웠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성적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주는 행위)을 다룬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직장 내 성희롱이란 신체적 접촉뿐 아니라 언어적·시각적 행위도 포함하며,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보다 합리적 피해자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법적 원칙입니다. 드라마 안에서 정부왕 판사가 "이성이 본능을 컨트롤한다"고 말하자, 실무관이 직접 그 거리를 좁혀 보여주는 장면은 말 대신 몸으로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 어떤 대사보다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 습관을 꽤 불편하게 건드립니다.

    • 불판 사고 에피소드: 진실은 기록이 아닌 '한 마디 물음'에서 나왔다
    • 직장 내 성희롱 에피소드: 합리적 피해자 기준이 실무관의 행동으로 직접 설명됨
    • 1인 시위 할머니 에피소드: 감정 이입이 오히려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역설도 함께 담김
    요약: 사건의 진실은 법 조문이 아니라 사람의 말 한 마디에서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삶의 무게, 시험에는 범위가 있지만 인생에는 없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법원보다 제 학창 시절 책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공부에는 범위가 있습니다. 교과서가 있고, 출제 범위가 있고, 열심히 외우면 점수가 나옵니다. 그 세계 안에서는 노력이 어느 정도 결과로 이어집니다. 저는 그 구조 안에서 꽤 오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배웁니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없을 때가 있고, 어떤 선택이 맞는지 알려주는 교과서가 없으며, 틀렸다고 해서 다시 시험을 볼 수도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입니다. 제도 안에서는 꽤 버텼는데, 그 틀이 사라지는 순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갑자기 모르겠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안의 한 세상 부장 판사는 그 반대편에 있는 인물입니다. 지방대 출신에 고시 낭인 생활을 오래 한 사람입니다. 화려한 학벌도, 반듯한 스펙도 없습니다. 하지만 20년 넘게 재판 기록을 들여다보며 사건 하나하나를 사람으로 봐온 사람입니다. 그 무게는 시험 점수로는 측정되지 않습니다.

    저는 가끔 시장이나 작은 가게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분들을 보면 괜히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런 정답지도 없이, 잘 안 되는 날도 버티면서 자기 손으로 삶을 만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 앞에서 저는 조금 부끄러워집니다. 제가 시험과 제도 안에서는 꽤 오래 살아왔는데, 그 밖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수천 명이 사법 시험 및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지만(출처: 법무부), 그 자격이 삶의 정답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요약: 시험에는 범위가 있지만 인생에는 없습니다. 그 차이를 이 드라마는 조용히 보여줍니다.

     

    전체 판사 회의, 조직을 바꾸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박차오름이 전체 판사 회의 소집을 주도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가장 뜨거운 순간입니다. 임신 중이던 동료 판사가 상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로 유산하는 사건이 계기가 됩니다. 오름은 즉각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연판장을 돌리려 하고, 혼자 앞으로 나섭니다.

    그런데 임바른이 막습니다. 방법이 틀렸다고 합니다. 법원 조직법과 대법원 규칙(법원 행정 전반을 규율하는 최고 규범으로, 판사 회의 소집 요건 등이 명시된 내규)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대법원 규칙이란 대법원이 사법부 내 행정 사항을 규율하기 위해 제정하는 법령 체계를 말하며, 일반 법률에 준하는 효력을 갖습니다. 법대로 할 때 가장 힘이 있다고 바른은 말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솔직히 바른 편이 더 맞다고 느꼈습니다. 정의로운 목적이라도 방법이 흔들리면 공격받을 빌미가 생깁니다. 실제로 오름의 행동은 법관 윤리 위반 소지로 역공을 당하고, 동료들도 하나씩 빠져나갑니다. 좋은 뜻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이 드라마는 꽤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오름이 결국 전체 판사 회의를 성사시키는 건 그녀의 진심 어린 연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장 판사의 거북목과 올챙이배와 낡은 구두를 나열하며 이 구조가 싫다고 말하는 그 장면은, 데이터나 논리보다 오래 남는 종류의 말이었습니다. 한국드라마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미스 함무라비》는 2018년 방영 당시 법원 내 조직 문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제 경험상 조직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열정보다 생존입니다. 살아남아 있어야 다음 판을 벌일 수 있습니다. 오름이 그걸 배우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가장 솔직한 부분이었습니다.

    요약: 조직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진심은 절차를 갖출 때 더 멀리 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미스 함무라비 원작 소설도 있나요?

    A. 있습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이 집필했습니다. 드라마 극본도 직접 맡았기 때문에 법원 내부 묘사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법정 드라마와 차별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는 작가가 취재를 통해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경우는 현직 법관이 직접 썼다는 점이 다릅니다.

    결론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저는 판사라는 직업보다 인생이라는 재판을 더 오래 생각했습니다. 법정에서는 판결문을 쓰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 삶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교과서도, 채점해 주는 선생님도 없습니다. 그냥 스스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그 사실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주의는 현실에 부딪혀 상처를 입고, 원칙주의는 때로 차갑게 느껴지고,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게 이 드라마가 남기는 말 같습니다. 법정 드라마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한 세상 부장 판사의 마지막 장면들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iJyDn9OrM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