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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일까요. 저는 드라마 《커튼콜》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질문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거짓말로 꾸며진 연극이지만, 그 어떤 진심보다 따뜻했던 이야기. 거기에 제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산가족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1950년 흥남 부두. 배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로 삶과 죽음이 갈리던 그날, 드라마 속 주인공 금순은 남편과 갓난아기를 북에 남긴 채 홀로 남쪽으로 건너옵니다. 이것이 《커튼콜》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거든요. 어릴 때는 그냥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기억은 많이 흐려지셨는데, 이상하게도 불안감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부릅니다. PTSD란 극도로 공포스러운 경험을 한 뒤 그 감정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 일상을 침범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에게는 이 증상이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실제로 출처: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쟁·재난 경험자의 PTSD 잔존율은 일반 인구 대비 유의미하게 높은 수준을 보입니다.
할머니가 밤이 되면 괜히 초조해하시고, 곁에 누가 있는지 계속 확인하려 하실 때마다 저는 그 불안의 뿌리가 아주 오래전 피난길 어딘가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무서웠던 순간의 감정은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다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 1950년 흥남 철수 작전으로 약 10만 명의 피난민이 배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은 추산 약 1,000만 명에 달합니다.
- 전쟁 트라우마는 당사자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uma)'의 형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위로의 연극 — 거짓말이 진심이 되는 순간
드라마의 핵심 설정은 단순합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금순의 마지막 소원은 북에 두고 온 손주 리문성을 한 번 더 보는 것. 그런데 그 손주는 데려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 실장은 무명 배우 재헌을 캐스팅해 리문성 역할을 맡깁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4화부터 재헌이 금순의 집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강하늘의 북한 사투리 연기가 단순한 억양 흉내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 자체를 담아내는 수준이었거든요. 배우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를 연기 용어로 메소드 액팅(method acting)이라고 합니다. 메소드 액팅이란 배우가 역할의 감정과 경험을 실제처럼 내면화해 표현하는 연기 방식으로, 재헌이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에 빗대어 즉흥 연기로 풀어낸 장면이 그 전형적인 예였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재헌의 독백이 저는 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말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거짓이 아니게 되는 지점.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고두심, 성동일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등장할 때 확실히 몰입도가 달라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 처리가 장면 전체의 무게를 잡아주더라고요.
전쟁 세대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일
금순이 70년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며 남편을 기다렸다는 설정. 처음에는 드라마적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경험상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 할머니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평생을 일하며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저는 그 시간의 무게를 전혀 몰랐습니다.
드라마에서 금순이 2002년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50년 만에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란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이 일시적으로 만나는 공식 행사로, 2000년 이후 총 21차례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통일부에 따르면 신청자 수는 13만 명을 넘지만 실제 상봉을 이룬 인원은 그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금순처럼 끝내 재회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분들이 훨씬 많다는 뜻입니다.
드라마는 이 팩트 위에서 '만약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상상을 펼칩니다. 저는 이 질문이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왔고, 더 오래 남았습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줄거리보다 할머니 얼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치매로 최근 기억은 흐려지셨지만, 가족을 사랑했던 마음과 평생을 버텨낸 삶의 흔적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Q&A
Q. 커튼콜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인가요?
A. 특정 실화를 직접 옮긴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이산가족 상봉 행사 등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사실감이 높습니다. 한국전쟁 이산가족이라는 소재 자체가 수많은 실제 삶에 닿아 있어 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Q. 커튼콜 몇 화부터 재밌어지나요?
A. 1화부터 3화까지는 배경과 등장인물 설명에 집중되어 전개가 다소 느린 편입니다. 재헌이 가짜 리문성으로 금순의 집에 들어가는 4화부터 본격적인 긴장감과 재미가 시작됩니다. 4화를 기준으로 확실히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결론
《커튼콜》은 거짓말에 관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마무리해 주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진실이 언제나 최선인가, 아니면 어떤 순간에는 한 사람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한가. 드라마는 이 질문을 쉽게 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저는 그 공포를 끝내 다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세대가 살아낸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한 가지입니다.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싶은 분께 《커튼콜》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