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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자꾸 제 얘기를 하게 됐습니다. 디즈니플러스 《메이드 인 코리아》 얘기입니다. 장건영이 백기태를 끝까지 쫓는 장면에서, 오래전 저도 비슷한 감각을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포기 못 하는 사람이 왜 답답하게 느껴졌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장건영 같은 캐릭터, 즉 원칙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주인공이면 응원하는 게 당연한데, 저는 중반까지도 그를 마냥 응원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원래 뭔가를 오래 붙잡는 사람이 아닙니다. 몇 번 시도하다 안 되면 놓아버리는 편인데, 딱 하나만큼은 몇 년을 붙들었습니다. 주변에서 "이제 그만해"라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도 못 놓겠더라고요. 그 경험이 있으니까 장건영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가는 걸 보면서 부럽다는 감정이 먼저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러움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하나"가 아니라, "나는 왜 저렇게 못 했나"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집착과 신념을 구분하는 게 중요합니다. 집착이란 대상이 아니라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상태를 말하고, 신념은 대상이 갖는 가치에 대한 확신에서 나옵니다. 장건영의 추적은 집착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신념에 더 가깝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장건영이 그냥 고집불통으로만 보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장건영의 신념이 옳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가 무언가를 잃고 소모되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포기 안 하는 게 미덕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득 앞에서 원칙을 접어본 경험
백기태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한 건, 그가 이해가 안 돼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이해가 돼서 불편했습니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마약 밀매에 손을 대는 이야기라고 하면 멀게 느껴질 것 같은데, 막상 보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백기태가 매번 하는 내부 논리가 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 "이렇게 해야 더 큰 것을 지킬 수 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이 논리는 실생활에서도 꽤 자주 등장합니다. 이득 앞에서 원칙을 접을 때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지나고 나서야 그게 그냥 편한 쪽을 고른 거라는 걸 압니다.
1970년대 한국은 그 규모가 국가 단위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한국은 홍콩과 대만에서 원료를 들여와 필로폰을 제조해 일본에 공급하는 생산 기지 역할을 했고, 중앙정보부가 그 유통망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깔면서 백기태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드라마 속 주요 역사적 모티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70년 3월 5일 동두천 마약상 부부 피살 사건 → 미군 범죄, 대마 마약 지정의 계기
- 1970년 3월 17일 정인숙 피살 사건 → 고위층 연루 의혹, 의문의 수첩
- 1970년 3월 31일 요도호 납치 사건 → 일본 적군파, 항공기 공중 납치
세 사건이 모두 1970년 3월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드라마가 이 시점을 서사의 출발로 삼은 건 그냥 우연이 아닐 겁니다. 여기서 서사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시간적 배치를 말하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는 실제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치해 시대 분위기를 밀도 있게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구조가 초반 전개의 느슨함을 어느 정도 감수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보는 법
이 드라마를 통쾌한 추적극으로만 접근하면 1~3화는 솔직히 좀 답답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본격적인 긴장감은 4화부터 붙기 시작합니다. 이 점을 미리 알고 보면 초반 호흡을 좀 더 여유 있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감독 우민호는 전작 《내부자들》에서도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인물 구도를 즐겨 씁니다. 여기서 인물 구도란 캐릭터들 사이의 권력 관계와 대립 방식을 설계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도 중앙정보부 라인과 검찰 라인이 단순히 대립하지 않고 서로 이용하고 교차하는 구도가 계속 등장합니다. 이 구조를 의식하면서 보면 캐릭터 하나하나의 선택이 다르게 읽힙니다.
노재원이 연기하는 표악수는 특히 그렇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캐릭터는 주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백기태에게 협력하다가 대립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층위가 꽤 섬세합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를 조금 더 재미있게 보고 싶다면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보시길 권합니다. 첫째, 나는 장건영 쪽인가 백기태 쪽인가. 둘째, 각 인물이 원칙을 접는 순간이 언제인가. 이 두 질문을 갖고 보면 단순한 선악 구도 이상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즌 1 마지막 화와 2026년 말 공개 예정인 시즌 2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개로 보면, 이 드라마는 "누가 이기나"보다 "왜 이렇게 됐나"를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라면, 저한테는 일단 그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4화까지만 참고 보시길 권합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달라집니다.
참고: 출처: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