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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모자무싸' 리뷰 (캐릭터 분석, 불안, 박해영 월드의 진화, 개인적 평가)

by tigermorning 2026. 5. 23.

JTBC 드라마 모자무싸 포스터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제목이 공개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마치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이 드라마를 내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구교환 배우님과 오정세 배우님, 강말금 배우님의 조합이라니, 제 인생 드라마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제목만큼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1화는 너무 식상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결국 끝까지 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매력이 뭘까, 이 글을 쓰면서 정리해 보려 합니다.

 

황동만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불안

황동만(구교환)을 처음 봤을 때, 저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저와 너무 닮아서요.

 

혹시 정신을 차려보면 나 혼자 떠들고 있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꽤 자주 그랬습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혼자 신나서 떠들다가 문득 이 공간에 내 목소리만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걸 깨닫는 그 순간, 수치심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이상하게 그런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뜬금없는 순간에 문득문득 떠올라 저를 괴롭힙니다.

 

드라마 속에서 형 진만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데뷔야? 성공이야? 뭐야?”라고 다그치자, 동만이 말합니다.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저는 이 대사 때문에 '모자무싸'를 끝까지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대사 한 줄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 오래 남습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 같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불안'을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이라고 설명하는데, 어느 심리학 교과서보다 더 정확하게 피부에 와닿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감각으로 눈을 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공포로 시작하는 기분이 어떤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모릅니다. 밤마다 '내일 아침엔 제발 그냥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가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때는 그게 마음이 아픈 신호인 줄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침대에서 나오면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밖에서는 늘 자신만만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었죠.

 

그래서였을까요? 황동만이 친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떠들고, 영화계를 욕하고, 남의 작품을 깎아내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아, 저 사람은 나다.’

 

그래서 황동만을 볼 때마다 짜증보다 먼저 수치심이 올라왔습니다. 마치 내 모습이 화면에 그대로 복제돼 있는 것 같았어요.

 

드라마는 황동만의 자괴감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지만 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과장된 자신감으로 버티다가, 밤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잔인하게 깎아내리는 황동만을요.

 

내면의 불안이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 황동만의 요란함은 '성격'이 아니라 '공포의 형상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더욱더 제 자신 같습니다.

 

박해영 월드의 진화

사실 저는 1화를 보고 드라마 보기를 중단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무 식상하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나의 아저씨'를 쓴 작가와 '동백꽃 필 무렵'의 감독이 만났다는 이 조합 자체가 워낙 강력해서 당연히 기대치가 높았는데, 막상 보니 '나의 해방일지'의 후속 편 느낌이었습니다. 배경음악도 '나의 해방일지'에서 들었던 것 같고, 여자 주인공의 결도 미정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보기 시작한 건 주변에서 재밌다는 반응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화쯤에서는 제가 초반에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보면, 이번 작품은 내러티브 구조 자체가 꽤 다릅니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은 대부분 감정을 안으로 삼킵니다. 말하지 않고 견디고, 침묵 속에서 무너집니다. 시청자는 그들의 내면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서서히 감정에 잠식됩니다.

 

반면, ‘모자무싸’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냅니다. 창피한 줄 모르고 떠들고, 화가 나면 화났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칩니다. 처음에는 그 방식이 산만하고 과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오히려 이쪽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인간은 그렇게 품위 있게만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종종 지질하고, 과장되고, 민망한 방식으로 자기 고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시청자는 예상보다 강하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완벽하고 조용한 인물보다, 못나고 허둥대는 인물에게서 더 자주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이 현실의 내가 하지 못하는 행위를 대신해 줄 때 오는 그 희열. 경세와 동만이 서로에게 날 선 말을 퍼붓고, 거기에 동만의 형까지 가세해 난장판이 되는 장면. 이 장면이 묘하게 시원한 이유가 바로 이 카타르시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평가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제목이 약속한 설렘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나의 아저씨'가 박해영 작가의 세 작품 가운데 압도적인 1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모자무싸', '나의 해방일지' 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 작품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나의 아저씨' 이후에 '모자무싸'가 나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대사의 깊이를 더한 '나의 해방일지'가 나왔다면, 세 작품이 골고루 사랑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조용히 견디는 대신 시끄럽게 흔들리는 사람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꾸 말을 쏟아 내고 소리치는 방법을 선택한 사람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 창피해서 차마 외면하고 싶어지는 사람들. 내 자신이 견디기 힘들게 싫어질 때 이들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좀 힘이 나거든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품위 있게 버티는 법보다 조금 못나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는, 아마 그 제목이 아직 다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문장은 선언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나는지, 아니면 끝나지 않는 건지, 이 드라마가 어떻게 마무리할지가 궁금합니다. 박해영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일까요, 아니면 지더라도 계속 싸우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위로일까요?

 

이 드라마의 결말이 그렇게 궁금하고 기다려지는 것은 아마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의 답답한 심정 때문일 겁니다. 나는 내 마음속의 불안을 어떻게 다루면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 싸움을 어떻게 마무리 짓는지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참고: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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