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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장면 어디서 봤더라"를 반복했습니다. 2012년 JTBC 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는 네 커플의 결혼 준비기를 동시에 풀어내는 멀티 플롯 구성이지만, 보고 나서 든 첫 감상은 기대보다 피곤함이 먼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네 커플, 그런데 왜 다 같은 길을 걷나 — 갈등구조
드라마에서 여러 커플을 동시에 다루는 방식을 앙상블 드라마라고 합니다. 여기서 앙상블이란 하나의 주인공 대신 여러 인물군이 동등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를 뜻합니다. 이 형식이 잘 작동하려면 각 커플이 서로 다른 갈등의 결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시청자가 "이 커플은 왜 싸우는 거지?"를 각각 다르게 물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보는 내내 느낀 건, 커플이 네 쌍이든 두 쌍이든 싸우는 방식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해가 생기고, 큰 소리가 나고, 누군가 뛰쳐나가고, 결국 눈물로 화해합니다. 이 사이클이 에피소드마다 각 커플에서 돌아가며 반복됩니다.
저도 예전에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 곁에서 한동안 얘기를 들어준 적이 있었는데, 현실은 훨씬 조용했습니다. 서류 하나 빠뜨려서 구청을 두 번 다녀오고, 예산 계산이 안 맞아서 말없이 서로 스마트폰만 보고, 별말 없이 그냥 밥 먹고 헤어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드라마처럼 매번 극적인 대치가 오지는 않았어요.
갈등구조가 반복되면 시청자는 무의식적으로 다음 장면을 예측하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도 정확히 그랬습니다. "저 사람 지금 오해하겠구나" 싶으면 정말 그렇게 됐고, 그게 맞아떨어질 때마다 재미가 아니라 피로감이 쌓였습니다.
이 드라마가 앙상블 구성을 택한 이상, 각 커플의 갈등 촉발 방식과 해소 방식에 더 다른 색을 입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2년 화면이 주는 거리감 — 시대감각
드라마의 비주얼 스타일을 미장센이라고 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조명, 색감, 인물 배치, 소품, 의상까지 포함한 시각적 연출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미장센이 달라지면 시청자가 느끼는 온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계속 신경 쓰였던 게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인테리어도, 배우들 옷차림도, 조명 색도 전부 지금 감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2012년 드라마니까 당연한 건데도, 보는 동안 그 거리감이 계속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예전 사진첩을 꺼내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는 분명히 세련됐다고 생각했던 옷차림이 지금 보면 "왜 저렇게 입었을까" 싶어지는 그 느낌이요. 그 시절 사진이 나쁜 게 아니라, 감각의 기준이 달라진 겁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옛날 드라마를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공정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같은 연도 작품이라도 지금 꺼내봤을 때 시각적으로 덜 낡은 드라마가 있는 반면, 이 작품은 화면 자체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걸림돌이 됐습니다. 그게 솔직한 경험이었습니다.
- 조명 색감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노란 톤
- 의상과 소품에서 2010년대 초반 트렌드가 강하게 느껴짐
- 실내 공간 연출이 현재 드라마 대비 비교적 단조로움
이 세 가지가 합쳐지니, 이야기가 조금 힘을 받을 때쯤 화면이 다시 발목을 잡는 느낌이 반복됐습니다.
드라마 속 결혼과 실제 결혼, 어느 쪽이 더 예측 불가능한가 — 현실성
리얼리티라는 말을 쓰겠습니다.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란 시청자가 "저 사람 나 같다"고 느끼게 만드는 디테일의 밀도를 말합니다.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현실에서 본 누군가를 닮아 있을 때 시청자는 화면에 더 깊이 빠져듭니다.
이 드라마는 결혼 준비의 소재 자체는 현실적입니다. 예단 비용, 예식장 선택, 양가 갈등, 예산 부족. 이런 주제들은 실제로 결혼을 경험하거나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입니다. 그 설정 자체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문제였습니다. 현실의 결혼 갈등은 훨씬 조용하고, 더 지루하고, 더 예측 불가능합니다. 제 친구 경우만 해도 예산 때문에 심하게 싸운 것보다,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이 각자 계산기 두드리다가 조용히 타협한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 침묵이 때로 더 무거웠고요.
드라마는 매번 그 침묵 대신 큰 소리를 선택합니다. 그게 극적 긴장감을 위한 선택이라는 건 압니다. 드라마 문법이기도 하고요. 다만 그 선택이 반복되면, 오히려 현실과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공감보다 관찰자 시점으로 보게 됩니다. 저는 중반부 이후로 그 시점이 고착됐습니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라면 굳이 드라마로 안 봐도 알 것 같다."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오히려 훨씬 예측 불가능했고, 더 웃기고, 더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있다면 가볍게 볼 수는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새로운 시각이나 지금의 감성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솔직히 조금 애매합니다. 앙상블 구성과 현실적인 소재라는 기본 재료는 충분했는데, 그 재료를 요리하는 방식에서 12년이라는 시간이 느껴졌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최근 드라마와 비교해서 보면,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