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풀은 자타공인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만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만화로 20년 넘게 웹툰 시장과 드라마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강풀의 스토리텔링
강풀의 그림체는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독특합니다. 인체 비례가 어색하고 배경 묘사가 단순하다는 평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그림의 부족함이 큰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선들이 이야기를 더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고, 독자의 감정이 그림이 아닌 서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강풀의 만화는 언제나 대중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의 이야기의 힘이 그림의 부족함을 완전히 메워주었고, 그 부족해 보이는 그림은 이야기를 더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2003년 내놓은 강풀의 '순정만화'는 총 페이지뷰 3,200만 회, 일일 최대 방문자 200만 명을 기록하며 강풀을 웹툰 스타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읽다 보면 만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드라마 콘티를 넘기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그림이 장면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가 확실하게 만화를 끌고 가는 구조입니다. 그림은 그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탄탄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강풀 작가는 스토리와 대사를 100% 사전 제작한 다음에 웹툰 연재를 시작하며, 6~8개월을 오직 원고 작업에만 쏟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웹툰을 연재할 때에도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독자들의 반응에 흔들려 이야기를 망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보니, 강풀 작가의 작품이 유독 영화 또는 드라마화가 많이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창작되었기 때문에 스토리가 탄탄했고, 그 결과, 2차 창작물로의 전환이 수월했던 것입니다.
강풀 작품의 세계관
요즘 콘텐츠 업계에서 '세계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세계관이란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연결되는 서사 구조를 뜻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대표적인 사례죠. 그런데 강풀이 재밌는 점은, 이 세계관을 처음부터 기획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6년 동안 13편의 장편 스토리텔링 웹툰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강풀 유니버스'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시간능력자, 노인들의 사랑, 아파트 연쇄 살인, 비행능력자 등 각기 다른 소재들로 장편 웹툰을 연재하다 보니, 작품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쌓인 겁니다. 여기에 그가 고안한 브랜드 체계와 시즌제가 결합되면서 세계관이 공고해졌다고 합니다. '강풀의 세계관'이 치밀하게 기획하고 설계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저 성실한 다작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더 정이 갑니다.
또, 20년 넘게 강동구를 작품 배경으로 고집한 결과, 강동구에 강풀의 이름을 딴 '강풀만화거리'까지 만들어졌는데, 이것을 두고 제가 읽은 'Long Black'에서는 "현실에도 강풀 유니버스가 만들어졌다"라고 표현하더군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풀의 하위 브랜드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성적인 멜로물: 「순정만화」
- 미스터리·심리물: 시즌1 「아파트」, 시즌2 「타이밍」, 시즌3 「이웃사람」, 시즌4 「어게인」, 시즌5 「조명가게」
- 액션물: 「무빙」 등 신체 능력자가 등장하는 액션 계열
위의 미스터리 심리물에서 보이듯이, 강풀은 세 개의 하위 브랜드에 시즌제도 도입하였습니다. 지속적인 독자들을 유입하면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강풀이 국내 웹툰 최초로 시즌제를 도입한 것이라고 하네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간단 리뷰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무빙은 전 세계 신규 가입자 약 410만 명을 유입시켰고, 디즈니 CEO가 직접 공식 실적 발표에서 언급할 만큼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나의 커리어에서 성공하기도 힘든데, 이렇게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모두 성공하는 강풀 작가를 보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무빙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저도 기대가 컸습니다. 원작 만화를 좋아했던 입장에서, 강풀 특유의 감정선이 영상으로 어떻게 살아날지가 궁금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마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작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킨 느낌도 있었습니다. 보통은 원작이 만화일 때, 드라마가 유치해지거나 만화의 상상력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무빙은 이런 느낌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역시 탄탄한 서사가 받쳐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조인성 배우님과 한효주 배우님이 드라마에서 열연을 해 주셔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호강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수려한 외모의 배우들이 '평범한' 느낌의 강풀 캐릭터들과는 잘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안에서 두 배우가 강풀 원작 만화 인물들의 분위기를 잘 드러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작품 전체로 보자면, 원작과 드라마가 각자 느낌이 많이 달라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드라마는 원작이 좀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라 좋았지만, 과거의 기억은 늘 미화되는 까닭에 저 개인적으로는 원작에 좀 더 정이 가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