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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과거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때 그랬더라면"을 멈추지 못할까요. 넷플릭스에서 혼자 볼 드라마를 고르다 만난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연애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인간이 기억을 얼마나 자유롭게 편집하는 존재인지를 보여 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 후회 심리
드라마 제목 자체가 이미 심리학 용어 하나를 품고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타라(たら)"와 "레바(れば)"는 각각 "~했더라면", "~이었더라면"에 해당하는 가정 조사입니다. 쉽게 말해 '만약'을 습관적으로 달고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세 주인공이 술을 마실 때마다 꺼내는 그 말들이, 제가 보기엔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후회심리(regret psychology)의 작동 방식 그 자체였습니다.
후회심리란 일어나지 않은 대안적 결과를 상상하며 현재의 선택을 부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인지 과정을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도 부르는데, 쉽게 말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비교 상상입니다. 문제는 이 상상이 거의 언제나 낙관적으로 설계된다는 점입니다.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기다리고 있었을 실패나 후회는 상상하지 않으니까요.
세 주인공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감이 쉽지 않았거든요. "그때 고백을 받아줬더라면"을 반복하는 린코를 보면서 저는 오히려 "그때 받아줬어도 결국 다른 이유로 후회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후회를 미화하지 않고 꽤 정직하게 들여다봅니다. 주인공들의 선택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사실은 그 정직함 때문일 겁니다.
- 린코: 지나간 인연을 계속 재계산하며 현재 감정을 흘려보냄
- 카오리: 이미 끝난 관계에 가능성을 덧씌워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함
- 코유키: 가장 냉정해 보였지만 결국 가장 큰 선택 실수를 저지름
사랑은 감정인가, 기억 편집인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질문은 이겁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인가, 아니면 그 사람에 관해 스스로 만들어 온 이야기에 대한 감정인가."
기억편집(memory reconstruc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편집이란 과거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기대·믿음에 맞게 무의식적으로 다시 쓰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연구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밝혀 왔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쉽게 말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에 맞게 과거를 다시 만들어 낸다는 뜻입니다.
카오리가 료를 놓지 못하는 장면들이 딱 그렇습니다. 그녀가 붙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료가 아니라, 자신이 아름답게 편집해 둔 과거의 료입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것도 그 부분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료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료와 함께했던 기억을 사랑하는 거구나." 그 차이를 작품이 굳이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꽤 영리한 연출이라고 느꼈습니다.
운명(destiny)이라는 말도 비슷한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운명이란 사후적으로 부여되는 서사, 즉 일어난 일들에 의미를 덧씌워 필연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간의 서사 본능입니다. 만남이 먼저 있고 운명이라는 이름이 나중에 붙는 거지, 운명이 먼저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바로 그 순서를 조용히 짚어 준다고 봤습니다.
사카구치 켄타로 배우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사카구치 켄타로였습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보여 준 절제된 감정 표현을 먼저 알고 난 뒤에 이 작품을 보니, 같은 사람인데도 전혀 다른 배우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KEY라는 예명의 모델로 등장합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 직설적인 화법, 주변 인물들에게 거침없이 "망상녀들"이라고 쏘아붙이는 캐릭터. 솔직히 처음엔 헤어스타일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그 어색함이 오히려 당시의 풋풋함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배우의 성장 궤적을 작품으로 역추적하는 재미는 꽤 특별합니다. 이른바 필모그래피 탐색(filmography tracing)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필모그래피 탐색이란 한 배우가 출연한 작품들을 시간 순서나 역순으로 따라가며 연기 변화를 관찰하는 감상 방식입니다. 같은 얼굴이 다른 연도, 다른 역할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하면, 작품 자체의 감상과는 또 다른 층위의 즐거움이 생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오래된 작품을 볼 때 "그때는 왜 저랬지"라고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이 사람이 여기서 출발했구나"라고 바라보면 같은 장면이 훨씬 다르게 들어옵니다.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의 사카구치 켄타로가 그랬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두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비교는 꽤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출처: Netflix Korea).
자주 묻는 질문
Q.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넷플릭스에서 2017년 본편 10화와 2020년 특별편 1화가 묶여 제공됩니다. 특별편은 약 1시간 30분 분량으로, 본편과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본편만 봐도 이야기의 흐름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데, 결말이 열린 구조라 특별편이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Q. 이 드라마, 원작이 따로 있나요?
A. 네,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입니다. 만화 특유의 개그 연출이 드라마에도 그대로 살아 있어, 안주 캐릭터들이 주인공들과 대화하거나 질책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실사 드라마에서 이런 연출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보다 보면 그 과장된 표현이 오히려 주인공들의 심리를 직관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라는 걸 알게 됩니다.
Q. 섹스 앤 시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A. 작가가 《섹스 앤 시티》를 의식했다는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세 명의 절친이 연애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구조, 도시 여성의 커리어와 사랑 사이의 고민이라는 설정이 닮아 있습니다. 다만 결이 다릅니다. 《섹스 앤 시티》가 선택을 즐기는 쪽이라면,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선택하지 못한 것을 붙드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Q. 사카구치 켄타로 출연작 중 이 드라마가 첫 작품인가요?
A. 아닙니다. 이 드라마 이전에 《중쇄를 찍자!》에도 출연했습니다. 《중쇄를 찍자!》에서는 순수하고 귀여운 캐릭터였던 반면,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에서는 직설적이고 날이 선 역할로 등장합니다. 두 작품을 연달아 보면 같은 배우의 전혀 다른 면을 비교할 수 있어, 팬이라면 특히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결론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연애 드라마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사람은 왜 지나간 선택을 계속 다시 계산하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지는 작품으로 더 오래 남아 있습니다. 후회심리와 기억편집이라는 개념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세 주인공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그 구조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말을 예전만큼 자주 꺼내지 않게 됐습니다. 그 말이 과거를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현재의 아쉬움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걸 조금 더 분명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연애 드라마를 찾는다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사람의 심리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볼 이유가 충분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