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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는 최종화 시청률 12%를 기록하며 종영했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솔직히 조금 씁쓸했습니다. 그 씁쓸함의 정체가 뭔지 드라마를 보면서 천천히 알게 됐습니다.
정시 퇴근 한 번이 이렇게 특별한 일이 됐을까
주인공 히가시아마 유이는 매일 오후 6시 정각에 퇴근합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컴퓨터를 끄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사 근처 중화요리집으로 직행해서 반값 맥주 한 잔을 마십니다. 이게 그녀의 루틴이고, 그녀의 일상이고, 그녀가 지키려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눈에 이 모습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동료 미타니는 이해를 못 하고, 부장 후쿠나가는 퇴근 준비하는 그녀에게 한마디를 얹습니다. 옆 테이블 중년 직장인들도 수군거립니다. 드라마가 묻는 건 결국 하나입니다. 왜 제시간에 퇴근하는 게 이상한 일이 됐을까요?
사실 히가시아마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예전 여행사에서 일할 때는 잦은 야근과 상사의 폭언 속에서 버티는 평범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서둘러 이동하다 계단에서 굴러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회사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회사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은 거죠.
제가 이 부분에서 조금 멈칫했던 건, 저도 비슷한 지점에서 뭔가를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다 번아웃이 왔을 때,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면 쉬는 시간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건 히가시아마 반대편에 있는 인물들도 꽤 납득이 간다는 점입니다. 워킹맘으로 복직한 시즈가타케는 육아휴직(育児休業), 즉 출산·육아를 위해 일정 기간 업무를 쉬고 복직하는 제도를 이용하고 돌아왔지만, 복직 후에도 성과에 대한 압박을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결과를 내려다 팀원들을 달달 볶고, 밤새 집안일과 업무를 병행하다 결국 지각을 하고 맙니다. 회사 기록에는 성실한 직원이지만, 실제 삶은 어느 쪽에서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미타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에 몰두하는 방식이 신입사원 코이즈미와 충돌하면서 관계가 터집니다. 코이즈미가 노트북 비밀번호를 바꾸고 사직서를 내버리는 장면은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솔직히 조직 안에서 세대 간 노동 가치관이 부딪히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선악 구도를 피하는 덕분에, 보는 내내 어느 한 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게 이 드라마의 가장 영리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히가시아마: 사고 후 삶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한 칼퇴 원칙주의자
- 미타니: 책임감이 강하지만 자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베테랑
- 시즈가타케: 복직 후 성과 압박과 육아를 혼자 감당하다 무너지는 워킹맘
- 타네다: 일벌레로 소문난 인물이지만 히가시아마의 전 남자친구라는 사적 관계도 얽혀 있음
퇴근은 했는데 왜 일은 끝나지 않을까 — 워라밸의 변질
드라마가 2019년에 방영됐을 때 시청률 9.5%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 내용이 당시 직장인들의 현실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카로시(過労死)', 즉 과로로 인한 사망이 사회 문제로 논의돼 온 나라입니다. 여기서 카로시란 극도의 장시간 노동이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넘어 사망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연간 수백 건의 과로사 인정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일본 후생노동성).
그런데 제가 이 드라마를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질문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2019년에는 "왜 퇴근을 못 할까?"가 핵심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퇴근은 했는데 왜 일이 끝나지 않을까?"가 더 현실적인 물음이 됐습니다.
주변에서 직장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록상으로는 정시 퇴근이지만 집에 가서 노트북을 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는 밤에도 울리고, 다음날 아침 회의 자료는 집에서 만들고, 이메일은 자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합니다. 퇴근이라는 형식은 지켜졌지만, 퇴근 이후의 시간은 여전히 일에 속해 있는 겁니다.
이건 워라밸(Work-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개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워라밸이란 단순히 퇴근 시간을 지키는 게 아니라, 퇴근 이후의 시간을 온전히 개인의 삶으로 돌려주는 구조적 조건을 뜻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임금근로자의 상당수가 퇴근 후에도 업무 관련 연락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저도 학생 신분이지만 이 감각이 낯설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공간이 따로 있던 시절에는 도서관 문을 나서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하루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 책상에서도 공부하고, 카페에서도 공부하고, 이동 중에도 영상 강의를 듣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지금 쉬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면 쉬는 감각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직접 겪어보니 더 분명하게 와닿습니다.
드라마 속 시즈가타케가 한밤중에 집안일을 하면서 업무 메시지에 답장하는 장면이 괜히 눈에 밟혔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장면은 워킹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퇴근 이후에도 일이 끝나지 않는 구조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건 몇 시에 퇴근 카드를 찍느냐가 아닙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을 진짜 자기 것으로 쓸 수 있느냐입니다. 히가시아마가 중화요리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닫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업무를 그 시간 안에 완결 지을 수 있는 실력과 원칙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칼퇴의 태도가 아니라 업무 완결성(Task Completion)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업무 완결성이란 주어진 시간 안에 맡은 일을 마무리짓는 능력과 습관을 말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국내에서는 왓챠(Watcha)와 웨이브(Wavve)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2019년 TBS 화요 드라마로 방영된 작품으로, 총 10화 구성입니다. 에피소드마다 독립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몰아보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Q. 드라마가 칼퇴를 무조건 옹호하는 내용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정시 퇴근을 하는 주인공과 일에 모든 것을 쏟는 동료들을 함께 그리면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작품의 핵심은 칼퇴 예찬이 아니라, 서로 다른 노동 가치관이 충돌하는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Q. 워킹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나오나요?
A. 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시즈가타케 캐릭터를 통해 워킹맘의 현실을 꽤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성과 압박, 팀 내 갈등, 아이 병가 문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현실적이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부모라면 특히 공감할 장면이 많습니다.
Q. 일본 드라마인데 한국 직장인도 공감할 수 있나요?
A. 충분히 공감됩니다. 야근 문화, 세대 갈등, 상사와의 마찰, 워라밸 문제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드라마를 보면서 "이건 우리 이야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장면이 꽤 됩니다. 직장인이라면 국적과 무관하게 몇 번은 멈추게 될 겁니다.
결론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는 2019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유효합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지금이 더 유효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야근 자체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퇴근 이후에도 일이 따라오는 구조가 문제가 됐습니다.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달라지지 않았고, 다만 그 질문이 향하는 현실이 조금 더 복잡해진 겁니다.
좋은 직장이란 정시에 퇴근하는 직장이 아니라, 퇴근 이후의 시간을 진짜 자기 삶으로 돌려주는 직장일 것입니다. 그 감각을 잃어버린 것 같다면, 이 드라마를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히가시아마가 맥주 한 잔 앞에 앉아 하루를 닫는 장면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