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여 년간의 한국 드라마를 떠올려 보면 단순히 재미있었던 작품을 넘어, 그 시대의 공기와 분위기가 같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드라마는 가족 안의 관계를 바꿔 놓았고, 어떤 드라마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식과 성공에 대한 생각을 흔들어 놓았으며, 또 어떤 드라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체를 조금 불편하게 들여다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랑이 뭐길래’, ‘대장금’, ‘오징어 게임’을 보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고, 또 어떤 사회로 이동해 왔는가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씁쓸한 것은 요즘 드라마가 예전보다 더 어두워졌다는 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뽑은 세대별 드라마 세 편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감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사랑이 뭐길래’
부모님 세대의 국민 드라마를 꼽으라면 아마 ‘사랑이 뭐길래’를 빼놓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이 드라마를 봤는데, 지금도 장면들과 주인공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아주 재미있게 드라마를 봤었는데요, 그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던 저의 사촌들은 한국이 그리운 날 이 드라마를 녹화한 비디오를 항상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뭉클합니다.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늘 여성들이 집안에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집안 분위기를 주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가 사랑받았던 이유는 한국 사회가 변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가족이 그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이 드라마가 나올 시점에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뭐길래’는 바로 그런 변화가 가족 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다면 ‘사랑이 뭐길래’만큼 좋은 자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보면 웃긴 장면도 많지만, 그 안에는 한국 사회가 조금씩 달라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대장금’
제가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 드라마는 단연 ‘대장금’입니다. 학교에서도 대장금 이야기를 했고, 어른들도 대장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는 지금도 '대장금'이 방영되고 사랑받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장금’은 단순히 톱스타가 출연한 궁중 드라마라서 성공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대극이라고 하면 늘 왕이나 권력다툼이 중심이었는데, 이 드라마에서 왕은 그저 조연일 뿐이었습니다. 시대극이면서 음식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 정말 독창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먹방이나 요리 프로그램이 너무 흔하지만, 당시에는 드라마 속에서 음식을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장금’을 한국 음식 콘텐츠 열풍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음식 자체를 재미있는 콘텐츠로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장금이라는 인물입니다. 낮은 신분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실력을 키우고 끝없이 성장하는 모습이 당시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열심히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꽤 강했습니다. 그래서 ‘대장금’은 단순히 음식을 다룬 드라마가 아니라, 노력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2000년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낙관적인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Z세대의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이 왜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는지 생각해 보면, 단순히 게임 설정이 신선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작품이 지금 시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가난하게 태어나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꽤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값은 너무 비싸고, 자산 격차는 커지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노력만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오징어 게임’ 속 인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돈 문제로 고생하다가 마지막 희망인 거대한 상금에 매달리는 모습은 어쩌면 지금 사회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주식, 코인, 로또처럼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서는 답이 없다"는 감정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단순한 서바이벌물이 아니라,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의 불안과 좌절을 담아낸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