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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가 처음 이 작품을 너무 단순하게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상태창, 퀘스트, 레벨업 같은 게임적 장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한 취사병의 성장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이 드라마는 평범한 이등병 강성재가 전설적인 취사병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중심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모두 보고 나니,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는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단지 장치일 뿐, 진짜 퀘스트는 인간관계였습니다.
인간관계라는 퀘스트
학교나 회사에서는 싫은 사람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거리를 둘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는 다릅니다. 싫어도 함께 생활해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는 인간관계의 민낯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강성재가 마주치는 문제들의 상당수가 요리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음식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그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조리 기술이 아니라 갈등이었습니다.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
오해하는 사람들,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
강성재는 결국 이런 사람들과 부딪히고,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이해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모든 갈등을 아름답게 화해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실처럼 불편함이 남아 있는 관계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가장 닮아 있는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플레이어에서 관찰자로
강성재는 상태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누군가와 친해져야 하면 친밀도 퀘스트가 뜨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면 미션이 주어집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판타지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나도 현실을 조금 게임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저는 원래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편입니다.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래 생각하고, 상대방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면 쉽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이 나와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상처받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강성재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왜 저 사람이 저럴까?"보다는 "이번 퀘스트는 어떻게 해결하지?"에 집중합니다.
물론 현실은 게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배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관조(觀照)라는 태도입니다. 관조란 자신의 감정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보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아,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구나."
"지금은 저 사람이 화가 난 상태구나."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과의 갈등은 감정적으로 대응할수록 커지고, 관찰하듯 바라볼수록 작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드라마 속 게임 시스템은 결국 인간관계를 대하는 바람직한 시선을 보여주는 장치였는지도 모릅니다.
레벨업의 진짜 의미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계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잘해야 하고, 운동을 시작해도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고, 조금만 실패해도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레벨 1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실패도 합니다. 퀘스트도 여러 번 다시 시도합니다. 경험치가 조금씩 쌓이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상하게 그런 과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만약 인생도 게임처럼 접근한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공부를 했다면 경험치 +10.
운동을 했다면 체력 +5.
어려운 사람과 대화를 잘 마쳤다면 인간관계 스킬 +3.
거창한 성과가 없어도 경험치는 계속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게 되고, 실패에 대한 부담도 훨씬 줄어듭니다.
강성재가 성장한 이유도 특별한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주어진 퀘스트를 하나씩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거대한 목표를 바라보기보다 오늘 주어진 작은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결론
'취사병 전설이 되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코미디 군대물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중반까지는 성장드라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작품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취사병 이야기이기도 하고, 군대 이야기이기도 하고, 게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모든 장르적 외피를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게임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그 사실을 의외로 따뜻하고 유쾌하게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화려한 요리 장면이나 상태창의 효과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인생을 너무 무겁게 짊어지지 않는 법. 어쩌면 그것이 강성재가 얻은 가장 높은 레벨의 능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