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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리뷰 (드라마 분석, 영상미와 음악, 캐스팅, 독창적인 판타지 로맨스)

by tigermorning 2026. 5. 26.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포스터

 

 

초능력 가족이라는 설정을 보고 저는 솔직히 가볍고 신나는 히어로물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이건 완전히 다른 결의 드라마였습니다. 우울증과 불안, 상실감을 초능력이라는 언어로 풀어낸 작품. 보는 내내 예상이 계속 빗나갔고, 그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드라마 분석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초능력을 가진 가족입니다. 예지몽으로 부를 쌓은 복만흠 여사, 하늘을 날 수 있는 딸 복동희, 행복했던 과거로 시간 이동할 수 있는 아들 복귀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손녀 복이나. 얼핏 들으면 마블 영화에서 흔히 볼 법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핵심은 단순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족'이 아닙니다. 능력을 잃는다는 것, 즉 능력 상실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능력 상실이란 초자연적 힘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극심한 트라우마 이후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비유하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앗아가는 것이 불면증, 비만, 우울증이라는 점이 저를 가장 강하게 붙잡았습니다. 잠을 못 자 예지몽을 꾸지 못하는 복만흠, 몸이 무거워 날지 못하는 복동희, 더 이상 행복한 기억이 없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복귀주, 주변과 단절된 채 게임에만 빠져 타인의 마음에 닿지 못하는 이나. 이건 누군가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보통 초능력물에서 가장 신이 나는 순간은 능력을 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반대입니다. 주인공들이 능력을 쓰지 못하는 장면에서 감정이 가장 진해집니다. 복귀주가 수백 번 같은 날로 돌아가 주변 사람들의 불행을 목격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장면들은, 보는 저에게도 꽤 오래 남았습니다. 단순한 드라마 연출이 아니라, PTSD가 일상을 어떻게 반복적으로 침범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꼭 PTSD가 아니더라도, 과거의 일에 매여 그날의 기억을 반추하느라 막상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무게를 알기에 복귀주에게 더욱 마음이 갔습니다.

 

이 드라마는 '히어로가 성장한다'는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각 인물이 왜 무너지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이고, 그렇게 시청자를 먼저 납득시킵니다. 덕분에 인물들의 회복을 더욱 응원하게 되고, 그들의 초능력이 그저 오락거리 소재라기보다는 우리 안의 상처가 회복되는 경험처럼 느껴집니다.

 

영상미와 음악, 캐스팅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색감 연출이었습니다. 1화에서도 영상미에 몰입감이 더 생겼습니다. 저의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각 인물들마다 영상의 색감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 상태, 또 각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가 대사 없이도 전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세밀한 색 설계를 지상파 드라마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아서, 이 작품이 꽤 의도적으로 비주얼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복귀주가 도다해 곁에서 처음으로 컬러로 세상을 인식하는 장면, 즉, 무채색 세계에서 도다해만 선명한 색상으로 보인다는 연출은, 복귀주의 초능력이 회복될 것이라는 점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음악도 빠질 수 없습니다. 가수 정재형 님이 작업한 OST는 드라마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솔직히 가끔 음악이 너무 자주 깔린다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그래도 곡 자체가 좋아서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도 이 드라마의 장면들이 다른 드라마보다 더 많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로 작동한 것 같습니다.

 

캐스팅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너무 익숙한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을 볼 때 “유명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라기보다, 그냥 그 인물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장기용은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섞인 복귀주의 분위기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아버지 역할도 의외로 꽤 잘 어울렸고, 천우희는 밝고 능청스러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한 도다해의 양면적인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렸습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 역할을 맡은 배우들 역시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면서도, 누가 튀기보다는 전체 호흡이 잘 맞았던 덕에, 이 드라마 특유의 인간적인 분위기가 더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독창적인 판타지 로맨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판타지 로맨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도다해가 복귀주의 손을 잡아주는 백화점 씬이었습니다. 판타지적인 설정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거대한 액션이나 능력의 폭발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접촉과 시선의 변화였습니다.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그 순간 필요한 만큼만 표현하는 절제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가장 취약한 순간에 건네받는 위로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인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그 감각을 꽤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복귀주가 도다해 곁에서 처음으로 무채색 세계에 색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는 연출도 같은 맥락입니다. 회복의 시작을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 자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로맨스는 여느 판타지물과 결이 달랐습니다.

 

특히 이 작품이 좋았던 이유는 '완벽한 구원자'가 아니라, 결함을 가진 사람이 또 다른 결함을 가진 사람을 조금씩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구조에 있습니다. 도다해는 사기 결혼 전문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이지만, 복귀주와의 관계 속에서 점점 감정이 진심에 가까워지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복귀주 역시 우울감과 단절 속에서 살아가던 인물이지만, 가족과 다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통해 각자가 스스로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도다해가 복귀주를 고쳐주는 것도, 복귀주가 도다해를 바꿔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곁에 있음으로써 서로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런 구조가 단순한 로맨스라기보다 서로를 통해 회복해 가는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이고, 그 점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저는 앞서 리뷰했던 '무빙'도 상당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하지만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같은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이렇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무빙'이 긴박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로 밀어붙인다면,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반대 방향을 선택합니다. 생일 파티에서 갈등하는 가족의 분위기라든지,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혼자 남겨진 공간에서 인물의 공허함이 드러나는 장면들처럼, 일상적인 상황들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해,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 천천히 스며드는 드라마입니다. 두 접근 방식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 마음에 더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v0B7TKfb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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