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상사'는 IMF 외환위기 시절의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 시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전체를 흔든 사건이었지만, 당시 학교를 다니던 저에게는 그저 뉴스 속 단어였을 뿐이었습니다. 드라마 '태풍상사'를 보면서 비로소 그 시절 부모님이 감당하셨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무너진 일상
드라마 '태풍상사'에서는 회사들이 하루아침에 망하고 한 집안의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뀝니다. 이게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과장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IMF 직전까지 한국 경제는 활발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큰 위기가 닥칠 것을 예감하지 못했던 분위기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IMF 외환위기의 충격은 하루아침에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 같은 단절감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회사가 흔들리고, 당연하게 유지되던 구조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대비할 틈도 없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수많은 가장들이 자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는 그런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 채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도 여전히 잘 웃었던 것 같고, 집에서는 여전히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어른들의 걱정이 어떤 무게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사실과 제 개인의 일상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저는 참 철이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새롭게 시작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쌓여 있던 불안과 균열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드러나며 폭발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게 유지되던 회사와 일상이 있었지만, 그 아래에서는 이미 여러 흔들림이 누적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체감되는 충격은 "갑자기 무너졌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 유지되던 구조가 순식간에 흔들리고, 안정이라고 믿었던 기반이 한순간에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장면들을 잘 보여줍니다.
애증의 연대
한국 사람들은 평소에는 한국에 대한 불만을 가장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제가 대학 때 만났던 외국인들은 "국민들이 자기 나라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 맞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항상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옛날 왕정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일반 민중들이 움직여 나라를 지켜 왔습니다.
이 드라마에도 나오듯, 외환위기 당시에는 '금 모으기 운동'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금 모으기 운동이란 국가 부채를 갚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돌반지, 결혼반지 같은 귀금속을 내놓은 집단적 행동을 말합니다. 전국에서 약 350만 명이 참여해 총 226톤의 금이 모였고, 이는 국가 신용 회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참 이상한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이것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가족 관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 더 쉽게 상처를 주고 더 자주 다투지만, 그렇다고 서로가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못합니다. 미워하면서도 걱정하고, 비판하면서도 챙기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회와 가족 모두 '애증'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사회적 결속력이란, 평소의 냉소가 위기 앞에서 연대로 전환되는 힘을 말하는데, 한국 사회는 그 전환이 특별히 빠른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훈
드라마 속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남겼습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뭉클함보다 부끄러움에 가까웠습니다. 그 시절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지 그때의 저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사회적 트라우마란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경험한 극단적인 충격이 개인의 심리와 문화적 태도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에 그런 방식으로 작용했습니다. 이후 한국 사람들이 안정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고, 직업 선택에서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이 충격의 연장선으로 보는 분석이 많습니다.
저는 그 시절을 실제로 겪었지만, 동시에 제대로 겪지 못한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가족의 표정을 읽지 못했고, 사회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같은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무게를 공유하지 못한 채 지나온 느낌입니다. 그래서 ‘태풍상사’를 보는 경험은 과거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과거의 빈칸을 뒤늦게 채우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상황을 더 자주 살피려고 합니다. 과거의 무심함을 단순한 후회로만 남기기보다, 앞으로 같은 상황에서 더 빠르게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제가 그 시절에서 배운 가장 실질적인 교훈입니다. 위기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도보다 먼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그리고 그 눈은 평소에 훈련되지 않으면 위기 때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지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