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드라마를 접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알고 있던 정보라고는 배우 박보영이 색다른 변신을 했다는 정도였고, 그조차도 단순한 설정의 흥미 포인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작품은 ‘설정의 기발함’이 아니라 ‘감정의 설득력’으로 기억되는 드라마였습니다. 쌍둥이의 삶을 바꿔 살아본다는 판타지적 장치 안에서 결국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감정들이었고,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쉬운 삶은 없다혹시 주변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은 걱정이 없겠다"라고 생각해 본 적 없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미지의 서울을 보다 보니 그 생각이 참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인물들의 상처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것이..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아픔보다 재능을 부러워했습니다. 2022년 전 국민을 사로잡았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였지만, 제가 느꼈던 감정은 응원이라기보다 부러움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그 감정이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위로가 필요했던 2022년2022년은 유독 따뜻한 드라마들이 인기를 끈 해였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자극적인 갈등이나 극단적인 악인 없이 일상의 관계를 중심에 둔 드라마들이 사랑받았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이런 드라마들은 인간적인 연결과 일상의 회복을 갈망하던 사람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 주었..
좋아하는 드라마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제가 처음 《나의 아저씨》를 봤을 때의 감각은 아직도 선명한데, 그 감각을 다른 나라 배우와 배경으로 다시 만든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이 들었거든요. 중국판 리메이크 《추설만과적동천(秋雪漫过的冬天)》이 2025년 1월 10일 중국 OTT 플랫폼 유쿠(Youku)를 통해 28부작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원작은 중국 드라마·영화 평점 사이트 더우반(Douban)에서 9.4점을 기록한 작품이고, 그 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시청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현지화리메이크 드라마를 평가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는 바로 현지화(localization)입니다. 현지화란 원작의 이야기 구조는 유지하되, 배경이 되는 나라의 문화·제도·정..
무료 OTT는 그냥 싸구려 콘텐츠만 있는 거 아닐까요? 저도 처음 Tubi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딱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Tubi, 이름도 생소합니다. 그래서 구글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로고를 보니, 미국에 사는 동생 집을 방문했을 때, TV 화면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월간 사용자가 디즈니플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의 서비스라고 하네요. 오늘은 미국과 캐나다 지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Tubi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광고 보면 공짜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 TV,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등등 매달 고정으로 빠져나가는 OTT 구독료가 점점 부담스러워집니다. 제가 실제로 매달 소비하는 콘텐츠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구독료만 이렇게 내는 것이 아깝습니다. 구독을 ..
초능력 가족이라는 설정을 보고 저는 솔직히 가볍고 신나는 히어로물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이건 완전히 다른 결의 드라마였습니다. 우울증과 불안, 상실감을 초능력이라는 언어로 풀어낸 작품. 보는 내내 예상이 계속 빗나갔고, 그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드라마 분석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초능력을 가진 가족입니다. 예지몽으로 부를 쌓은 복만흠 여사, 하늘을 날 수 있는 딸 복동희, 행복했던 과거로 시간 이동할 수 있는 아들 복귀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손녀 복이나. 얼핏 들으면 마블 영화에서 흔히 볼 법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핵심은 단순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족'이 아닙니다. 능력을 잃는다는 것, 즉 능력 상실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능력 상실이란 초자연적 힘이 사라진..
강풀은 자타공인 그림을 잘 못 그린다는 만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만화로 20년 넘게 웹툰 시장과 드라마 시장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강풀의 스토리텔링강풀의 그림체는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독특합니다. 인체 비례가 어색하고 배경 묘사가 단순하다는 평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그림의 부족함이 큰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선들이 이야기를 더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고, 독자의 감정이 그림이 아닌 서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강풀의 만화는 언제나 대중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의 이야기의 힘이 그림의 부족함을 완전히 메워주었고, 그 부족해 보이는 그림은 이야기를 더 현실적이고 진솔하게 느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