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드라마를 볼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귀신도, 잔인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블라인드》를 보다가 문득 "이거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데"라고 중얼거린 그 순간이 가장 소름 돋았습니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이토록 현실적인 인간의 심리와 집단 침묵의 공포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국민참여재판 설정이 만들어 낸 공포드라마는 한 여대생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이른바 '조커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피의자 정만춘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면서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여기서 국민참여재판이란, 법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배심원(陪審員)으로 참여해 유죄·무죄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전문 법조인이 아니라 이..
후회는 과거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때 그랬더라면"을 멈추지 못할까요. 넷플릭스에서 혼자 볼 드라마를 고르다 만난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는 연애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저에게는 인간이 기억을 얼마나 자유롭게 편집하는 존재인지를 보여 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그때 그랬더라면" — 후회 심리드라마 제목 자체가 이미 심리학 용어 하나를 품고 있습니다. 일본어에서 "타라(たら)"와 "레바(れば)"는 각각 "~했더라면", "~이었더라면"에 해당하는 가정 조사입니다. 쉽게 말해 '만약'을 습관적으로 달고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세 주인공이 술을 마실 때마다 꺼내는 그 말들이, 제가 보기엔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후회심리(regret psychology)의 작동 방식 그 자체였습니다.후회심리란 일..
사랑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5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의 이야기, 쿠팡플레이 시리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면서 저는 내내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낭만적인 재회보다 시간이 감정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더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드라마입니다.우연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만약 그날 그 장소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그 만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저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극 중 주인공 최홍은 어머니의 과보호와 끝없는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나인 퍼즐》에서 퍼즐 한 조각이 배달되면 반드시 누군가 죽습니다. 저는 1화를 보고 나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사건의 구조가 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관찰하는 인간 자체를 해부하는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범죄 심리 — 퍼즐이 말하는 살인의 언어《나인 퍼즐》의 핵심 설계는 범죄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에 있습니다. 여기서 범죄 프로파일링이란, 범행 현장에 남겨진 행동 흔적을 분석해 범인의 성격·심리·생활 패턴을 역추적하는 수사 기법입니다. FBI가 1970년대부터 체계화한 방법론으로, 단순한 물증 수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출처: FBI 공식 사이트).드라마 속 범죄 분석관 윤이나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주목하는 건 "불필요한 행동의 부재"입니다. 살인..
왓챠피디아 평점 4.1점. 숫자만 보면 무난한 작품처럼 느껴지지만, 직접 보고 나면 이게 단순히 '힐링 드라마'라는 말로 정리되는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그냥 가볍게 보다 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예가가 시골 섬마을에 내려가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설정이 너무 뻔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 《바라카몬》은 2023년 후지TV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서예라는 정적인 소재와 고토 열도라는 공간을 배경 삼아 한 인간이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재능 없으면 의미 없는 삶이라고 믿었던 저한테 이 드라마는 꽤 불편한 질문을 던졌습니다.섬마을이라는 공간주인공 한다 세이슈는 저명한 서예가의 아들로,..
컵라면을 먹으면서 이걸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궁금해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물 붓고, 3분 기다리고, 먹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NHK 연속 TV 소설 99번째 작품인 《만복(만푸쿠)》을 보고 나서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집어 드는 손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인스턴트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와 그의 아내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인데, 총 151화라는 분량이 무색할 만큼 한 회 한 회가 그냥 지나치질 않았습니다.컵라면 발명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 이 순간 주변에 컵라면 하나 있다면, 그 뒷면 성분표 말고 '누가 이걸 만들었나'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만복》의 남자 주인공 타치바나 만페이는 실존 인물 안도 모모후쿠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인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