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셨나요? 저는 《사사니온난아》를 다 보고 나서, 그 아주 사소한 일이 한동안 눈에 밟혔습니다. 풋풋한 취준생 로맨스로 시작해서 ALS(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진단으로 무게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 드라마는, 형지 평점 사이트 기준 7.6점을 받은 2024년 중국 드라마입니다. 가볍게 틀었다가 꽤 오랫동안 생각을 붙잡혀 버렸습니다.드라마 기본 정보와 구성 — 팩트로 짚어보기《사사니온난아》는 2024년 방영한 중국 드라마로, 남자 주인공 린퉈 역에 린이, 여자 주인공 안즈췌 역에 이란적이 출연했습니다. 영어 제목은 'Angels for Sometimes'인데, 원제의 의미가 대략 '나를 따뜻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에 가깝다고 보면 두 제목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느..
비행기를 탈 때마다 퍼스트 클래스에 누가 타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굿잡》을 보면서 그 기묘한 호기심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재벌 탐정과 취업준비생이 불법 경매장에서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보다 보면 사건 해결보다 '저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옵니다.재벌 세계라는 낯선 구경거리드라마 첫 장면부터 '국가의 목걸이가 거래되는 불법 경매장'이라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세계적인 보석 디자이너 지젤 베아르가 세공한 '여왕의 눈물'이라는 목걸이가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인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실소가 나왔습니다. 몇십억 원짜리 보석이 불법으로 경매되는 공간이 실제로 있을까요?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가 그런 ..
판사라는 직업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 반대였습니다. 어렵고 긴 시험 끝에 얻어낸 자리이긴 하지만,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니, 어릴 때 하는 그 고생이 오히려 더 쉬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정답이 없는 삶을 마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드라마는 꽤 정직하게 보여주거든요.정의란 무엇인가, 법정 드라마가 묻는 진짜 질문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인 추적보다 "이 사람에게 옳..
넷플릭스 최초의 일제강점기 시대극이 2023년 추석 연휴에 공개됐습니다. 저는 역사 드라마라면 웬만해선 첫 화부터 끝까지 붙어 있는 편인데, 《도적: 칼의 소리》는 예고편을 보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광활한 간도 벌판을 배경으로 한 액션,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만주 웨스턴 장르라는 조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15년 만에 돌아온 만주 웨스턴, 그 배경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만주 웨스턴(Manchurian Western)이란 미국의 서부극 장르를 만주와 간도라는 공간에 이식한 독특한 한국식 장르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황량한 들판, 말을 탄 사내들, 총과 칼이 뒤섞인 추격전을 20세기 초 동북아 역사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2008년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이 장르를 세상에 알렸고, 이..
로맨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던 저도 결국 끝까지 보게 만든 드라마가 있습니다. 서양 신화 속 큐피드를 한국 정서에 녹여 낸 《내 남자는 큐피드》인데요. 500년 전 지상에 유배된 큐피드가 환생한 첫사랑과 재회하는 이야기로, 가볍게 웃으면서도 이상하게 현실적인 감정 하나가 끝까지 따라다녔습니다.판타지 로맨스, 억지 같은데 왜 빠져드는 걸까요즘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거리를 두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 유치함이 오히려 매력"이라며 빠져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전자였습니다.《내 남자는 큐피드》의 설정은 꽤 복잡합니다. 삼신할배의 명으로 지상에 내려온 네 명의 큐피드, 그중 임무 성공률 100%를 자랑하던 엘리트..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보다 악역에게 더 감탄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구경이》를 보는 내내 그랬습니다. JTBC에서 방영된 이 작품은 이영애 씨가 출연했음에도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는데, 솔직히 왜 묻혔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습니다. 연쇄살인마 송이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추리보다 사람의 심리가 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소시오패스 캐릭터, 이렇게까지 정교할 수 있을까드라마 속 송이경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위해 고양이를 학살한 수위에게 막걸리에 부동액을 타서 독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감정 표현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경은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처리할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여기서 소시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