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일까요. 저는 드라마 《커튼콜》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질문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거짓말로 꾸며진 연극이지만, 그 어떤 진심보다 따뜻했던 이야기. 거기에 제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이산가족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1950년 흥남 부두. 배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로 삶과 죽음이 갈리던 그날, 드라마 속 주인공 금순은 남편과 갓난아기를 북에 남긴 채 홀로 남쪽으로 건너옵니다. 이것이 《커튼콜》의 출발점입니다.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거든요. 어릴 때는 그냥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기억은 많이 흐려지셨는데, 이상하게도 불안감만큼은 여전히 선..
솔직히 저는 배우가 연출한 작품을 볼 때 "과연 얼마나 잘 만들었을까"부터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언프레임드》를 보고 나서 그 의심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이 각각 연출한 네 편의 숏필름(short film)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훨씬 선명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저 나름대로 뜯어봤습니다.배우 감독 --- 배우가 카메라 뒤로 간다는 것의 의미요즘 저는 같은 질문을 여러 AI에게 동시에 던져 보는 실험을 자주 합니다. 신기하게도 동일한 프롬프트(prompt)를 입력해도 결과는 매번 다릅니다. 여기서 프롬프트란 AI에게 주어지는 입력 지시문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사람이 AI에게 건네는 질문이나 명령입니다. 같은 출발점인데도 도착지가 전부..
드라마를 보다가 처음으로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멈춰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사고를 치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판사 아버지의 표정을 보면서였습니다. 그 얼굴에는 분노도, 실망도 아니라 공포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지키겠다는 본능 앞에서 평생 쌓아 온 원칙이 무너지는 공포. ENA 드라마 《유어 아너》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됩니다.부성 본능 — 가장 위험한 선택의 시작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가족이 연루된다면 나는 과연 원칙을 지킬 수 있을까?"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더 불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유어 아너》의 판사 송판호는 아들 호영이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 그..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를 바꾸는 게 정말 답일까요? 《시지프스: the Myth》를 보면서 저는 이 질문을 내내 놓지 못했습니다. 2021년 JTBC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조승우·박신혜 주연의 SF 시간여행물로,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스케일에 도전한 작품입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장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줄거리: 미래에서 사람이 떨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가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은 양자 분자 전송, 즉 물질의 정보를 양자 단위로 분해해 다른 위치로 재조합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자 전송이란 물체를 물리적으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물체를 이루는 정보 자체를 전달해 목적지에서 동일하게 재현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팩스가 ..
솔직히 저는 《허쉬》를 처음 볼 때 언론계 이야기라 공감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특종이니 오보니 하는 세계는 저와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게 기자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직장인 이야기더군요. 조직 안에서 양심과 생존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오히려 더 불편하게, 더 오래 남았습니다.조직 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 실제일반적으로 직장을 선택할 때 사람들은 직무, 연봉, 성장 가능성을 따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드라마 속 디지털 뉴스부는 그 점에서 굉장히 정직했습니다. 이른바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 저질 보도를 ..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습니까? 저는 《리멤버》가 딱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봤을 때의 감상이 완전히 다른 드라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절대기억이라는 설정, 실제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드라마 《리멤버》의 핵심 장치는 주인공 서진우가 지닌 '절대기억', 즉 한 번 본 것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기억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절대기억이란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에 가까운 개념으로, 실제 의학계에서도 극소수 사례가 보고된 바 있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뇌의 기억 저장 방식이 일반인과 달라 과거의 특정 장면을 마치 동영상처럼 재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제가 이 설정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건, 단순히 "기억을 잘한다"는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