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라는 직업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 반대였습니다. 어렵고 긴 시험 끝에 얻어낸 자리이긴 하지만,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니, 어릴 때 하는 그 고생이 오히려 더 쉬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정답이 없는 삶을 마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드라마는 꽤 정직하게 보여주거든요.정의란 무엇인가, 법정 드라마가 묻는 진짜 질문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인 추적보다 "이 사람에게 옳..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보다 악역에게 더 감탄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구경이》를 보는 내내 그랬습니다. JTBC에서 방영된 이 작품은 이영애 씨가 출연했음에도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는데, 솔직히 왜 묻혔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습니다. 연쇄살인마 송이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추리보다 사람의 심리가 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소시오패스 캐릭터, 이렇게까지 정교할 수 있을까드라마 속 송이경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위해 고양이를 학살한 수위에게 막걸리에 부동액을 타서 독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감정 표현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경은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처리할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여기서 소시오패..
드라마를 고를 때 배우 이름을 먼저 검색하는 게 과연 맞는 방법일까요. 저는 솔직히 그 답을 《굿보이》를 보기 전까지 잘 몰랐습니다. 스포츠 선수 출신 경찰이라는 설정보다, 화면을 채우는 배우들의 호흡이 오히려 더 강하게 기억에 남은 드라마였습니다.설정만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가 달랐습니다일반적으로 "스포츠 스타 출신 경찰"이라는 설정은 단순한 볼거리용 장치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1화부터 보기 시작하니 이 설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의 정체성과 묶여 작동하고 있었습니다.《굿보이》의 주인공 윤동주는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출신 경찰입니다. 여기서 메달리스트 출신 특채 경찰이란,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입상한 선수들을 ..
착한 사람이 직장에서 손해를 본다는 말, 혹시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바로 그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중소기업 화장품 회사 러블리 코스메틱의 마케팅 본부 과장 남정기는 스스로를 '방어적 비관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웃음보다 안쓰러움을 먼저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묵묵히 버티는 직장인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입니다.직장인 공감 — 왜 착한 사람이 제일 먼저 당할까요여러분은 직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삼킨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외교공관과 연구기관에서 일하면서, 누가 봐도 성실한 사람이 가장 조용히 참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습니다.남정기가 딱 그런 인물입니다. 후배에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를 바꾸는 게 정말 답일까요? 《시지프스: the Myth》를 보면서 저는 이 질문을 내내 놓지 못했습니다. 2021년 JTBC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조승우·박신혜 주연의 SF 시간여행물로,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스케일에 도전한 작품입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장르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줄거리: 미래에서 사람이 떨어진다는 게 무슨 뜻인가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은 양자 분자 전송, 즉 물질의 정보를 양자 단위로 분해해 다른 위치로 재조합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자 전송이란 물체를 물리적으로 이동시키는 게 아니라, 물체를 이루는 정보 자체를 전달해 목적지에서 동일하게 재현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팩스가 ..
솔직히 저는 《허쉬》를 처음 볼 때 언론계 이야기라 공감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특종이니 오보니 하는 세계는 저와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게 기자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직장인 이야기더군요. 조직 안에서 양심과 생존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오히려 더 불편하게, 더 오래 남았습니다.조직 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 실제일반적으로 직장을 선택할 때 사람들은 직무, 연봉, 성장 가능성을 따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드라마 속 디지털 뉴스부는 그 점에서 굉장히 정직했습니다. 이른바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로, 저질 보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