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탈 때마다 퍼스트 클래스에 누가 타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굿잡》을 보면서 그 기묘한 호기심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재벌 탐정과 취업준비생이 불법 경매장에서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보다 보면 사건 해결보다 '저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옵니다.재벌 세계라는 낯선 구경거리드라마 첫 장면부터 '국가의 목걸이가 거래되는 불법 경매장'이라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세계적인 보석 디자이너 지젤 베아르가 세공한 '여왕의 눈물'이라는 목걸이가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인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실소가 나왔습니다. 몇십억 원짜리 보석이 불법으로 경매되는 공간이 실제로 있을까요?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가 그런 ..
판사라는 직업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그 반대였습니다. 어렵고 긴 시험 끝에 얻어낸 자리이긴 하지만, 인생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니, 어릴 때 하는 그 고생이 오히려 더 쉬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정답이 없는 삶을 마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드라마는 꽤 정직하게 보여주거든요.정의란 무엇인가, 법정 드라마가 묻는 진짜 질문일반적으로 법정 드라마라고 하면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나서 느낀 건 전혀 달랐습니다. 이 드라마는 범인 추적보다 "이 사람에게 옳..
넷플릭스 최초의 일제강점기 시대극이 2023년 추석 연휴에 공개됐습니다. 저는 역사 드라마라면 웬만해선 첫 화부터 끝까지 붙어 있는 편인데, 《도적: 칼의 소리》는 예고편을 보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광활한 간도 벌판을 배경으로 한 액션,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만주 웨스턴 장르라는 조합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15년 만에 돌아온 만주 웨스턴, 그 배경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만주 웨스턴(Manchurian Western)이란 미국의 서부극 장르를 만주와 간도라는 공간에 이식한 독특한 한국식 장르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황량한 들판, 말을 탄 사내들, 총과 칼이 뒤섞인 추격전을 20세기 초 동북아 역사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2008년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이 장르를 세상에 알렸고, 이..
로맨스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던 저도 결국 끝까지 보게 만든 드라마가 있습니다. 서양 신화 속 큐피드를 한국 정서에 녹여 낸 《내 남자는 큐피드》인데요. 500년 전 지상에 유배된 큐피드가 환생한 첫사랑과 재회하는 이야기로, 가볍게 웃으면서도 이상하게 현실적인 감정 하나가 끝까지 따라다녔습니다.판타지 로맨스, 억지 같은데 왜 빠져드는 걸까요즘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거리를 두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 유치함이 오히려 매력"이라며 빠져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에는 전자였습니다.《내 남자는 큐피드》의 설정은 꽤 복잡합니다. 삼신할배의 명으로 지상에 내려온 네 명의 큐피드, 그중 임무 성공률 100%를 자랑하던 엘리트..
드라마를 보다가 주인공보다 악역에게 더 감탄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구경이》를 보는 내내 그랬습니다. JTBC에서 방영된 이 작품은 이영애 씨가 출연했음에도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는데, 솔직히 왜 묻혔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습니다. 연쇄살인마 송이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추리보다 사람의 심리가 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소시오패스 캐릭터, 이렇게까지 정교할 수 있을까드라마 속 송이경은 처음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위해 고양이를 학살한 수위에게 막걸리에 부동액을 타서 독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감정 표현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경은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처리할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여기서 소시오패..
드라마를 고를 때 배우 이름을 먼저 검색하는 게 과연 맞는 방법일까요. 저는 솔직히 그 답을 《굿보이》를 보기 전까지 잘 몰랐습니다. 스포츠 선수 출신 경찰이라는 설정보다, 화면을 채우는 배우들의 호흡이 오히려 더 강하게 기억에 남은 드라마였습니다.설정만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가 달랐습니다일반적으로 "스포츠 스타 출신 경찰"이라는 설정은 단순한 볼거리용 장치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1화부터 보기 시작하니 이 설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의 정체성과 묶여 작동하고 있었습니다.《굿보이》의 주인공 윤동주는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출신 경찰입니다. 여기서 메달리스트 출신 특채 경찰이란,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입상한 선수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