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넷플릭스 《지옥에 떨어집니다》를 다 보고 나서, 그 말이 절반쯤은 거짓말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드라마는 1980년대 일본을 뒤흔든 실존 점술가 호소키 카즈코의 일생을 그립니다. 화려한 성공 뒤에 야쿠자 유착, 황혼 혼인 스캔들, 동료 착취 의혹까지 겹겹이 쌓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점술보다 그것을 믿었던 사람들의 심리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호소키 카즈코, 실제 인물과 드라마 사이일반적으로 점술가라고 하면 조용한 골방에 앉아 사주를 보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실제 호소키 카즈코는 그 반대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1938년생인 그녀는 전후 혼란기의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열 살도 채 되기 전부터 동생들을 건사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도둑질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성공했다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펀드 매니저가 이웃집을 털기 시작하는 이야기. 그런데 보다 보니 자꾸 딴생각이 났습니다. 남의 집 창문 불빛을 보며 저 집은 행복할까 상상하던 제 오래된 버릇이 떠올랐거든요.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프렌즈&네이버스》는 범죄물의 형식을 빌려 비교와 욕망이라는 훨씬 불편한 주제를 건드립니다.빈집 털이로 시작된 몰락: 쿠퍼의 이야기주인공 쿠퍼는 대형 금융사의 펀드 매니저(Fund Manager)였습니다. 여기서 펀드 매니저란 고객의 자산을 위탁받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고 수익을 관리하는 전문직으로,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돈을 굴려 성과를 내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잘나가던 중년 남성..
솔직히 저는 《초원의 집》이라는 제목을 보기 전까지 이 드라마가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작품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2026년 7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 드라마,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틀었다가 어느 순간 멍하니 앉아서 화면만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는데 왜 이렇게 계속 보게 되는 건지, 그 이유를 찾다 보니 결국 제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잔잔함이 오히려 낯선 시대, 그래서 더 불편했습니다요즘 드라마를 고를 때 저도 모르게 "1화 초반 10분 안에 뭔가 터지는 작품"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초원의 집》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1화가 시작되면 19세기 캔자스 초원 위로 마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오는 장면이 나오고, 이 가족이 오늘 어디에 집을 지을지 살피는 모습이 이어집니..
회당 제작비 약 50억 원.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보고 솔직히 기대치를 꽤 높게 잡았습니다. 그런데 8화를 다 보고 난 뒤,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는 장면을 꼽으려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설정도 좋고, 배우도 좋고, 화면도 화려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 질문을 붙잡고 이 글을 씁니다.반전 피로감《동궁》에는 8화 안에 반전이 다섯 번 나옵니다. 연못 귀신이 진짜 원흉이 아니었고, 대비가 최종 범인인 줄 알았더니 숙빈이었으며, 세자는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인 줄 알았더니 형제를 먼저 독살한 살인자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꽤 밀도 있는 구성처럼 들립니다.그런데 여기서 미스디렉션(misdirection) 문제가 생깁니다. 미스디렉션이란 시청자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잘..
오컬트 드라마가 무섭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손 the guest》를 보면서 그 질문에 다시 답하게 되었습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웠습니다. 《정년이》에서 정은채 배우를 보고 다른 작품을 찾다가 이 드라마에 닿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건드렸습니다.오컬트 드라마인데 정작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었습니다흔히 오컬트(Occult) 장르라고 하면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해 공포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오컬트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비·주술적 현상을 소재로 삼는 장르를 말하는데, 한국 드라마에서는 귀신이나 악령이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습니다.《손 the guest》도 처음에는 그런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악령이 나오고, 빙의(憑依) 장면이 나오고, 소름 ..
진실을 말하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일까요. 저는 드라마 《커튼콜》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 질문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거짓말로 꾸며진 연극이지만, 그 어떤 진심보다 따뜻했던 이야기. 거기에 제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이산가족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1950년 흥남 부두. 배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로 삶과 죽음이 갈리던 그날, 드라마 속 주인공 금순은 남편과 갓난아기를 북에 남긴 채 홀로 남쪽으로 건너옵니다. 이것이 《커튼콜》의 출발점입니다.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도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이거든요. 어릴 때는 그냥 억척스럽고 부지런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기억은 많이 흐려지셨는데, 이상하게도 불안감만큼은 여전히 선..